PROLOGUE
"옥수수 라멘은 이제 도쿄에서 그렇게 희귀한 장르는 아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차가운 콘 포타쥬를 연상시키는 스프에 담긴 냉라멘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모테나시 쿠로키(饗 くろ㐂)가 만드는 옥수수 라멘은 지금 유행하는 옥수수라멘들과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옥수수를 갈아 스프를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를 짜낸 즙, 페이스트, 구운 채로, 그리고 또 생 옥수수 그대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고 곤부스이 츠케멘이라는 구조 안에서 하나씩 경험하게 만든다."

※ 본 포스팅은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방문한 식당만 기록합니다.광고·협찬은 일절 받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욜의사입니다.
제 블로그는 단순히 유명한 식당을 나열하기보다, 직접 방문한 식당 중 개인적으로 의미 있다고 느낀 곳들을 기록하는 공간입니다.
맛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는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제 글들을 읽어보시고 취향과 방향성이 비슷하다고 느끼신다면, 생소한 식당들도 만족하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나치게 대중적인 맛집보다는, 음식의 개성과 스토리·조리 철학이 느껴지는 곳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 욜의사 취향 간단 스펙
☞ 양 : ★★★★☆ (성인 평균 이상 / 대부분 특 또는 추가 주문)
☞ 맵찔이 정도 : ★★☆☆☆ (매운맛 좋아하지만 극매운 단계는 어려움)
☞ 모험가정신 : ★★★★☆ (향신료·이국적 식재료 선호)
☞ 육식성 : ★★★★★
☞ 가성비 : ★★☆☆☆ (여행에서는 경험 우선)
☞ 특이사항 : 음주·흡연 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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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나시 쿠로키(饗 くろ㐂)의 점주 이야기
점주는 쿠로키 나오히토(黒木直人)씨. 1971년 도쿄 출생으로 집안은 생선가게를 했다고 알려져있고, 핫토리영양전문학교(服部栄養専門学校)를 졸업한 뒤 아카사카의 요정에서 일본요리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이후 이탈리아 요리까지 수련하였고 요식업 계열사에서는 총주방장을 맡아 신규 메뉴 개발, 지역 식문화 관련 프로젝트, 국제 컨퍼런스에서 전개할 메뉴와 음식 감수를 맡는 등 다양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그래서 모테나시 쿠로키는 흔히 있는 유명 라멘집의 직계 제자가 만든 가게 같은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수련한 경력이 없는 채로 한 요리사가 독학해 자신만의 라멘을 만든 스토리에 가깝습니다.
그런 쿠로키가 라멘에 빠지게 된 계기로 자주 언급되는 곳이 도쿄의 명점 라멘 텐진시타 다이키(らーめん天神下 大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이키의 토리소바(とりそば)를 먹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 라멘계로 방향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라멘집이 아닌 타 요식업계에서 라멘계로 유입된 다소 독특한 이단아와 같은 포트폴리오를 가진 모테나시 쿠로키. 처음에는 누구의 직계 제자도 아니었던 쿠로키에서 이제는 반대로 제자들이 독립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기후의 멘 키이로(麺 㐂色) 점주 와케 코지(分部耕智). 40세부터 쿠로키 밑에서 3년간 수련한 뒤 독립했고, 쿠로키의 첫 독립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치의 토리토사카나(鶏と魚) 역시 세타가야(せたが屋)와 모테나시 쿠로키에서 수련한 점주가 연 가게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그니쳐 메뉴는 단연 시오라멘이지만, 현재의 모테나시 쿠로키는 단순히 ‘시오라멘으로 유명한 집’보다는 니혼료리와 같은 재료 해석과 계절감을 라멘으로 풀어내는 하나의 독립적인 흐름을 만든 가게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모테나시 쿠로키는 2011년 6월 20일 간다이즈미초(神田和泉町)에 점포를 열었고, 12년간 같은 자리에서 영업해오다가 2023년 10월 기존 자리의 영업을 종료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10월 29일, 지금의 아사쿠사바시역 근처 점포로 이전하였습니다.
¿ 무슨 라멘을 파는 곳인가요?

제가 이날 방문한 목적은 옥수수로 만든 히야시 츠케멘이었지만, 모테나시 쿠로키의 시그니쳐 메뉴는 사실 시오라멘 입니다. 양식을 떠오르기 할 만큼 기름을 자비없이 사용하기로 유명한 시오라멘인데요, 호불호가 있다고 들었지만 매우 궁금했는데 최근 옥수수 라멘에 대한 경험치를 더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없이 이벤트 메뉴를 골랐습니다. 이벤트 메뉴의 가격은 1,950엔으로 지금 환율로 계산해보아도 싼 가격은 아니지만, 이 곳이 사용하는 재료들을 읽어보니 납득이 가는 수준이었습니다.
¿ 가게 내부 분위기는?

내부는 다찌석으로 모두 이루어져있구요, 분위기가 여느 라멘집보다 사뭇 더 고급스러운 느낌입니다. 자리에 비치된 의자부터 다찌, 그리고 마감재 등 디테일에 엄청 신경쓴 것 같았습니다. 다이닝같은 은은한 간접조명도 한 몫 했네요.

매장 한쪽에는 실제 제면에 사용되는 밀가루 포대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에베츠제분(江別製粉)의 하루유타카100(ハルユタカ100). 홋카이도의 희소종인 하루유타카를 100% 사용한 밀가루로, 특유의 단맛과 향, 모치모치한 식감이 특징입니다.

주방 내부도 전형적인 라멘야의 주방이라기보다는 다이닝 레스토랑의 주방이 떠오를 정도로 깔끔하게 세련된 모양새입니다. 정돈도 잘되어 있었어요. 라멘을 만드는건 점주가 대부분, 아내분이 부재료 등을 옮기거나 준비해주십니다.
본격적인 메뉴 탐방

자리로 안내되어 착석 후에 세팅된 식기들을 바라봅니다. 나름 하이엔드 라멘집을 지향하는 듯한 모테나시 쿠로키답게 기물들 모두 고급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각이잡힌 렌게부터 특수 제작된 받침들 따뜻하게 준비된 물수건까지. 스시집이나 니혼료리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주문한 한정 라멘이 나왔습니다. 한정 메뉴의 정확한 명칭은 키미히메노 츠케소바(きみひめのつけそば). 여기서 ‘키미히메(きみひめ)’는 쿠로키가 만들어낸 메뉴명이 아니라, 야마나시현 고후시 나카미치(中道) 지역에서 재배되는 브랜드 옥수수의 이름입니다. 2004년부터 이 지역에서 재배되어 온 노란 스위트콘으로, 옥수수 열매의 피가 얇고 부드러우며 수확 직후에는 생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강한 단맛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 이벤트 라멘은 키미히메를 단순히 갈아 츠케지루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옥수수의 수염으로 우린 물에서 시작해 진하게 갈아낸 츠케지루, 구운 옥수수, 마지막에는 생 키미히메까지 칵테일처럼 접시 옆에 꽂아 하나의 옥수수를 서로 다른 조리법과 질감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구성입니다.

생 옥수수를 옆에 이렇게 끼워놓는 발상 자체도 라멘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퍼포먼스입니다.

그리고 화려한 토핑 구성들. 기본 이벤트 메뉴 고성에 250엔을 내고 오리 차슈를 추가 주문했습니다. 모테나시 쿠로키의 오리차슈 또한 맛있기로 유명합니다.

단새우, 쥬키니, 가지, 적양파 등의 토핑은 차갑게 담아낸 라멘과 잘 어울립니다.

면
면은 자가제면으로 히라우치면(自家製平打ち麺)입니다. 리시리콘부(利尻昆布)를 사용한 콘부다시로, 여기에 시오타레(塩ダレ)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옥수수 스프에 찍어 먹는 게 아니라 면과 곤부스이만 먼저 먹어보는 게 좋다고 해서 그대로 먹어보았구요, 콘부의 점액질이 넓은 면 표면을 코팅하면서 매끈한 질감을 만들고, 차갑게 씻어낸 히라우치멘 특유의 탄력과 밀향을 비교적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넓은 면에는 뒤에 등장할 옥수수 츠케지루를 끌어올리는 또 다른 역할이 설계되어 있었는데요, 뒤에 츠케지루에 찍어먹어보니 면이 시루를 지나치게 잘 머금어 스프가 먼저 없어질 정도였습니다.

두툼하게 올라간 핑크빛을 띄는 오리 차슈, 카모로스(鴨ロース). 낮은 온도로 균일하게 익힌 듯한 선명한 핑크빛과 두툼한 지방층이 특징이고, 옥수수의 단맛과 오리 지방의 단맛이 기분좋게 어우러집니다. 소문대로 맛있는 오리 차슈였습니다.

이 라멘에서 옥수수가 내뿜는 단맛과는 다른, 말그대로 채소에서 오는 천연의 고급스러운 단맛을 잘 표현해줬던 가지. 절임 형태로 준비해두신 것 같고, 기름기를 머금은 가지가 몰캉한 식감까지 라멘 안에서 변주를 주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쥬키니는 부드럽지만 베어물어 씹을 때 마치 잘 손질된 칼로 두부를 썰 때와 같은 절삭감이 매우 경쾌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역시나 채소에서 오는 옅은 단맛이 특징. 앞서 언급한 가지와 쥬키니의 단맛, 그리고 옥수수까지 이어지는 단맛의 연결고리가 전혀 물리지 않게 설계된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그래도 걸쭉한 스타일의 츠케지루인데, 단면이 넓은 히라우치멘이 스프에 빠지니 겉잡을 수 없이 스프를 뒤엉키게 만들어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물반 고기반 바다에 던진 그물마냥 미친듯이 스프가 딸려올라옵니다. 콩국수에 칼국수 사리를 넣어서 먹는걸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어떤 질감인지 이해하시기 쉬울 듯 합니다 ㅎㅎ

사진에서 보시듯 꾸덕하다는 말 이외에 다른 미사여구가 생각이 잘 안나는 질감.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이런 질감과 진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한가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맛이었습니다.
시오라멘이라는 시그니쳐 메뉴도 유명하지만 계절마다 모테나시 쿠로키만의 색깔로 강렬하게 뽑아내는 한정 메뉴들이 궁금하여 방문해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대만족. 최근들어 옥수수라멘에 대한 일본 내에서의 인기도 높아짐과 함께, 여러 라멘집들을 탐방할 때 옥수수라멘에 대한 경험치가 더 있으면 좋았겠다는 저의 니즈가 맞물려서 결정된 방문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말그대로 옥수수라멘이라는 분야에 대한 경험치 증진과 저의 추구미(맛)를 알수 있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꼭 옥수수 계절이 아니더라도, 다른 시즌에도 쟁쟁한 식재료를 활용한 계절한정 라멘을 전개하니, 한정 라멘 기간과 일정이 맞으신다면 한 번 쯤 일정에 넣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모테나시 쿠로키(饗 くろ㐂)는 누구에게 추천할 만한가
✅ 계절 한정 라멘을 찾아다니는 라오타
✅ 곤부스이 츠케멘을 좋아하지만 흔한 쇼유 츠케지루에서 벗어난 것을 먹어보고 싶은 사람
✅ 라멘에서 재료의 산지/조리법/먹는 순서 까지 설계된 다이닝적인 접근을 좋아하는 분
❌ 강한 동물계 육수, 쇼유의 키레(キレ), 향미유의 펀치를 원하는 분
❌ 옥수수의 단맛이 메뉴의 중심인 식사를 싫어하는 분
❌ 라멘집 방문시 시그니쳐 메뉴를 꼭 먹어야만 하는 분
구글 지도 링크 :
https://maps.app.goo.gl/fMafypRRmJWDc9NQA
모테나시 쿠로키 · 1 Chome-28-9 Asakusabashi, Taito City, Tokyo 111-0053 일본
★★★★☆ · 일본라면 전문식당
www.goo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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